많은 사람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어떻게 그 힘들다는 사법고시에 합격했냐고 묻곤 한다. 젊은 사람들 가운데는 좀더 구체적으로 '공부를 어떤 식으로 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1975년 내가 제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당시는 물론이고, 20년이 거의 다된 지금까지도 내게 묻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칭찬도 반인 것 같고 호기심도 반인 것 같다.

  그런데 그때마다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워낙 오래 전의 일이고 또한 조금은 쑥스럽기도 해서였다. 그러나 혼자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고 흐뭇해진다. 남들보다 많이 힘든 상황에서 공부를 했고 시험에 합격해서 그런지, 내 인생을 되돌아볼 때 사법 고시에 합격했던 그 순간만큼 행복했고 성취감을 느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수험 잡지인 [고시계] 75년 7월호에 '과정도 하나의 직업이었다'라는 제목으로 고시 합격기를 쓴 적이 있다. 이번에 책을 내기 위해 [고시계] 75년 7월호를 어렵게 구해 오랜 만에 내 합격기를 읽어보았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참으로 절망도 깊었고 일도 많았던 고시 공부 시절.....

  어릴 때 쓴 것이라 여기저기 어색한 데도 많고 유치하게 느껴지는데도 있지만, 그 당시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하고 싶어 손보지 않고 그대로 싣는다. 그 동안 나의 고시 공부 시절에 대해 물어 보았던 분들께 만족스런 대답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 * *

<과정도 하나의 직업이었다>

 

1. 머리에

 

  지나간 일은 언제나 아름답게만 보인다지요? 산꼭대기에서는 힘겹게 올라온 가파른 산길마저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듯이 말입니다. 또 승자의 과거는 그것이 자서전이든 타인의 작품이든 가끔 신화적으로 수식되어 있음을 봅니다.

  사법시험의 합격, 이것이 긴 여정에서 하나의 중간 목적지에 불과하지만 하나의 성취와 조그마한 승리로 평가될 수도 있기에, 막상 합격기라는 것을 쓰려 하니 자칫 어떤 승리감에 도취되거나 과거를 돌아보는 낭만적인 기분에 도취되어 힘겹고 괴로웠던 긴 수험 과정의 체험을 스스로 미화시켜 얘기하는 잘못을 범하게 될까 여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졸 합격자라는 다소 특이한 제 입장이 독학도들에게 어떤 관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둔한 솜씨나마 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억을 더듬고 그때의 생생한 감정들을 살려서 몇 자 쓰고자 합니다.

 

2. 동기 - 꿈을 키우던 시절

 

  나는 경남 진영이라는 읍에서 약 10리나 떨어진 산골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위로는 형님이 두 분으로, 큰형님은 부산 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고등고시를 준비하였으나, 본래 가난한 살림에 벅찬 대학 공부 때문에 가세는 더욱 기울어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쯤 끝내 응시도 해보지 못한 채 그만두고 말았다.

  당시 나는 형님을 따라 마을 뒤에 있는 봉화사라는 절에 가서 그곳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형님 친구들의 법이론이나 시국에 대한 토론을 자주 듣곤 했으며, 또 형님은 자신의 좌절에서 오는 울적한 심정을 털어놓기를 좋아했던 모양으로 가끔 상기된 어조로 나에게 여러 가지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물론 나는 그때의 얘기들이 너무 어려워서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았으나, 그들의 엄숙한 표정과 격한 어조의 토론은 만만한 젊음의 패기와 이상을, 그리고 격렬한 논쟁의 뒤에 주고받는 소탈한 웃음은 사나이들의 인간미와 호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느꼈고, 이것들이 고시 학도들의 속성이요 또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으로까지 생각했다. 결국 이런 분위기는 나에게 고시를 해보겠다는 막연한 꿈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살림은 더욱 기울어 작은형님은 학업을 중단했다. 부모님의 노동 능력은 차츰 줄어갔고, 마침내 최후의 명줄로 남아 있던 조그만 과수원마저 빚에 쪼들려 처분해야 했다.

  나는 3학년이 되면서 일찌감치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5급 공무원 시험을 거쳐 독학으로 고등고시에까지 밀고 나가 보겠다는 결심으로 옛날 형님께서 보시던 누렇게 바랜 [법제 대의]와 [헌법의 기초 이론(유진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해 10월에는 일자리를 찾아 나갔던 형님께서 돌아와 내가 하는 꼴을 보고 크게 나무라시며 진학을 권하셨다. 나도 가정 사정을 들어 고집을 부려 보긴 했으나 끝내 강권에 못 이겨 부산 상고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예순이 넘으신 부모님들의 생활은 아무런 토지의 근거도 없이 자신들의 노동으로 해결하시도록 내버려 둔 채 작은형님이 어렵고 힘든 직장을 전전하며 벌은 돈으로 내 숙식비를 부담해야 했으니, 대학 진학은 아예 엄두도 내어 보지도 못하고 취직반에 들어갔다.

  그래도 역시 막연하게나마 길러 오던 고시에의 꿈을 버릴 수는 없었던지 3학년 말 농협에 취직시험을 치른 후 발표도 나기 전에 65년도 11월호 [고시계]를 한 권 샀다. 고시의 냄새를 알기 위하여.....

 

3. 출범, 그리고 표류

 

  농협에의 낙방에 이어 개인 회사에 취직했으나 생각보다 급료가 박했고 근무 시간이 많았던 것은 고시로 향한 출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야산 돌밭을 개간하여 심은 고구마와 영세민 취로 사업장에서 내주는 밀가루로 연명하시는 부모님들의 실망을 모른 체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 달 반의 급료 6천원으로 몇 권의 책을 사고 마을 건너편 산기슭에 토담집을 손수 지어 '마옥당(磨玉堂)'이라 이름 붙인 후, '사법 및 행 정 요원 예비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당시에는 학력 제한이 있었다). 책값을 벌겠다고 울산 한국비료 공장 건설 공사장에 막노동을 하러 갔다가 이빨이 3개나 부러지고 턱이 찢어지는 불운을 겪으면서도, 용케 11월에는 제7회 예시에 합격하였다.

4개월 정도의 준비로 예시에 합격하는 행운과 함께 이제까지의 나의 처절한 투쟁은 막을 내렸다. 나의 예시 합격에 자극받아 큰형님은 67년에, 작은형님은 68년에 각각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67년에는 법률 서적을 살 형편이 못되어 예비 시험 과목을 새로 공부하고 있다가 68년에는 군에 입대했다. 군에 있는 동안에도 공부를 해 보려고 애썼으나 영어 단어 하나 암기를 못하고 3년을 표류하고 말았다.

 

4. 열풍에 돛을 달고 - 그리고 좌초

 

  71년 제대를 하고 집에 오니 집안 사정은 상당히 호전되어 있었다. 4월부터 옛날의 '마옥당'을 수리하여 공부를 시작, 5월 2일에 3급 1차에 합격, 그리고 사법시험으로 전환. 처음 법률 책을 대하니 다소 흥분되기도 했으나 과연 이 어려운 것을 해낼 수 있을지 더럭 겁부터 났다. 그러나 소설을 읽듯이 마구 읽었다. 생각보다 쉬웠다. 겉만 슬슬 핥으니 그럴 수밖에……. 전 과목을 무질서하게 읽었다. 행정법과 상법이 좀 어려운 듯했다. 민법을 모르니 그럴 수 밖에……. 소송법은 전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실체법을 전혀 모르니 그럴 수밖에……. 4개월에 걸쳐 오리무중을 헤매면서 전 과목 3회독을 마쳤다.

  「고시계」를 66년도부터 소급해서 샀다. 그러나 합격기 말고는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 동안의 체험과「고시계」합격기에서 읽은 것을 정리하여 얻은 것은 책을 읽는 순서 정도였다. 이리하여 민법을 먼저 읽고 상법과 행정법에 들어가고 실체법을 먼저 읽고 소송법에 들어 간다는 순서를 정하여 9월부터 시작했다. 새로 읽으니 과거의 3회독은 간 곳 없고 전혀 새로 읽는 기분이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다시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10월에 14회 공고가 났다. 외면하려 했으나 자꾸만 들떴고 마침내는 고시 사상 최단기 기록을 목표로 하여 무작정 덤볐다. 문제 집을 샀다. 1차의 합격은 나의 이러한 만용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젠 문제집마저도 내 나름대로 밑줄을 긋고 그 부분만 골라 읽었다. 8개월 정도의 준비로 2차 시험에 응했다.

  시험장에서 고향의 중학교 후배를 만났다. 사법시험 준비는 나보다 훨씬 선배였다. 나의 공부 기간을 듣고는 "전 과목을 한 번 다 보지도 못했겠네요?" 했다. 어리석게도 나는 자신이 무시당하는 기분에 저으기 분개하면서 우습게 받아 넘겼다. "두고 보라지……. "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르는 막강한 뱃심이었다. 이런 뱃심으로 시험에 응했다. 기막히게 더 잘 썼다. 내가 아는 건 다 썼고 또 아는 건 그 뿐이었으며 집에 와서 책을 대조해 보지도 않았으니, 기막히게 잘 썼다고 생각할 수밖에……. 점수는 50점 얼마였다.

  뒤에 읽어보니 문제집에 밑줄을 그어 두었던 부분이 모두 엉터리였다. 다른 색깔로 새로 밑줄을 고쳐야 할 형편이었다.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응시자를 젖히고(?) 과락 없이 300명 선 안에 들어갔으니 다음에는 틀림없을 거라고 또 한 번 낙관했다.

  그러나 발표 후 5-6개월을 이유 없이 허송했다. 제대 후 공부도 시작하기 전부터 마을 처녀에게 마음을 뺏기기 시작하여 상대방의 단호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열을 올리게 되고 8개월에 걸쳐 집요하게 추근거려 1차 시험 직전에야 겨우 처녀의 마음을 함락시키고는 안도했는데, 이제 그녀가 결혼 적령을 넘었다는 사실과 고시와 연애는 양립할 수 없다는 중론 사이에서 그녀와 나는 고민의 연쇄반응을 일으켰고, 또 이틀이 멀다 하고 만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애정의 열도에 비례하여 공부를 위한 시간에의 집착이 강하여 심리적 갈등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9월에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장유암이라는 절에 들어갔다. 국사의 추가로 부담이 늘었지만 시험이 연기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 '수석 합격'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73년 1월에는 예년의 시험 대신에 그녀와 결혼했고 5월에는 아들도 낳았으나 나는 여전히 절에서 계속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 그런데…… 글쎄 정말 이럴 수가! 그렇게 끔찍이도 나를 아껴주시며 자신의 못 다한 소망을 나에게 걸어 꿈을 키워 주시던 큰형님이 5월 14일 교통사고로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리셨다. 한 줌 잿가루로 화해 버린 형님의 유해를 고향에 묻고 절로 올라 올 때는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이제부터 전혀 공부도 되지 않았다. 단지 타성에 의하여 책장을 넘기고 있는 동안에도 마음은 삶과 죽음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과 고시와 출세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결론은 하나, 형님의 꿈 그리고 나의 꿈, 어떻든 고시는 필연적이었다. 15회 시험까지 남은 기간은 40여일 뿐, 차츰 초조해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책을 읽기만 하면 가슴이 울렁거리며 답답해지는 알지 못할 병에 걸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시험을 한 달 앞두고 보따리를 싸 들고 집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아직 산고가 풀리지 않아 부자유스러운 아내와 핏덩이 신걸이, 자식을 잃은 부모님의 비탄……. 공부가 될 리 없으니 병은 점점 더해지고……. 수석 합격이라는 화려한 표어와는 달리 응시조차 포기하고 싶은 것을 부모님의 시선이 두려워 마지 못해 상경하였으나, 시험 첫 날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목구멍에 무엇이 치밀어 올라 우유와 계란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그래도 기를 쓰고 책을 볼라치면 몸에서 식은 땀이 배어 나왔다.

「고시계」의 통계란에 따르면 결과는 90위 정도, 정리만 잘하면…… 하는 자신을 얻은 셈이었다.

 

5. 새로운 좌표 - 직업 의식

  그러나 좀 쉬어야 했다. 책을 잡기만 하면 예의 증세가 나를 괴롭혔다. 고시를 그만둘까도 싶었다. 학교 성적이 우수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고시를 해야 할 필연적 이유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도 되었고,법을 공부하면서 차츰 정의의 이념을 배워 가는 동안 '고시=권력=출세'라는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등식이 우스운 것임을 느끼게 될 무렵 형님의 뜻 아닌 타계는 예시 과목의 철학 개론을 공부하면서부터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해 오던 삶의 의미를 보다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맹목적 출세주의와 ' 그 수단으로서의 고시'라는 과거의 생각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상고를 졸업한지 너무 오래되어 새로운 진로를 찾기는 어렵고 하여 고시를 그만두지는 못했다. 다만 이제는 고시 아니면 파멸이라는 배수의 진은 거두어 버리고, 하나의 직업인이 자기의 생각에 충실히 종사하듯이 고시 공부도 평범한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려 했다. '수석 합격'이라는 표어 대신에 '천직 =소명'이라 써붙이고, 숙소를 마옥당에서 집으로 철수하여 직장에 출퇴근하는 기분으로 낮에는 마옥당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집에 와서 여유가 있을 때만 공부하기로 하였다.

  아기가 울면 달래기도 하고 기저귀도 갈아 채우고 밤이 늦도록 아내와 정담을 나누며 잠을 덜 자면 이튿날 낮잠을 잤다. 그러나 가슴과 목의 증세는 쉽게 낫질 않아 16회 시험까지는 부담 없이 쉬었다. 16회 시험도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응시한 정도였고 성적은 15회보다 내려 130위 안팎으로 생각되었다. 17회 준비 1년간은 정말 순조로웠다. 절에 있을 때 만들었던 독서대의 실용 신안 특허 출원 관계로 9-10월에 조금 쉰 것 말고는 가금 아내와의 대판으로 선풍기 목이 부러지거나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활극이 연출되기도 하는 가운데에도 예전과 같이 재미있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10월 하순부터는 풀었던 긴장을 바짝 조여 이때부터는 아내가 들 건너 마옥당까지 점심을 날라다 주었고 잠은 여전히 집에서 잤으나 신걸이가 잠들기 전에는 우리 방에 못 오게 하고 책을 보았다.

  그러나 17회 때에도 역시 정리가 다 되지는 않았다. 단지 다른 어느 때보다 정리 기간이 착실했으니 훨씬 낫겠지……. 집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신문 기자들이 수석 합격자 인터뷰하러 올 테니 당신도 피력할 소감 한 마디 준비해 두지 그래."하고 허풍을 쳤다. 건강은 좋았고 시험은 순조로웠다. 집에 와서도 역시 출발 전의 호언장담을 되풀이했다. 3월 27일 아침 먹고는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어 진작부터 낮잠에 들어갔다. 꿈결에 "무현아! 무현아!"하는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 그도 뒷말을 잇지 못했고 더 들을 필요도 없이 아내는 내 무릎에 엎드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형님! 지하에서도 신문을 보십니까? 아버지 어머니도 형님 생각에 자꾸만 우십니다."

 

6. 더하고 싶은 이야기

  공부 방법, 책의 선택, 공부 장소, 독서 방법 등에 관한 문제는 각각 제 것이겠지요. 그래도 일반론이 있다면 이미 많은 선배님들의 합격기가 말한 것과 나도 같습니다.

그래서 제 특이한 입장에 관한 것과 또 제가 따로 하고 싶은 얘기만 골라서 제 경험을 예로 들어 쓰렵니다. 다만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얘기하는 것은 객관성을 잃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마는, 어느 정도 참고는 되리라 믿습니다.

 

1) 독학에 대하여

  응시자 중에 4년제는 물론 초급대학에도 안 간 사람들만을 독학도로 계산해도 그 수는 600명을 넘는데, 이 수는 서울대 출신 응시자 800명에 거의 육박하는 수임에도 합격자 수는 수년만에 하나씩 나올 뿐으로 도저히 비교가 안된다. 이런 점을 보면 대학교에는 꼭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주로 경제 사정과 연령이 문제인 것 같으나, 경제 문제라면 요즘 일부 사립 대학에서 고시반을 편성하여 학비는 물론 숙식 일체까지 밀어 준다고 하니 오히려 독학보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벼울 것이다. 연령 문제도 생각 나름이 아닐까?

 

2) 그래도 구태여 독학을 하겠다면 독학도들의 고시 합격률이 지극히 저조한데 반하여 대학 출신자 중에는 법대 출신이 아니고도 고시에 합격하는 사람이 많고 17회에는 수석 합격자가 공대 출신이다. 이러한 결과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연유하는 것이겠으나 나는 이 점을 대학에서 얻게 되는 일반 교양 과정의 지식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과거 예비 고시에 합격한 후에도 법서를 살 형편이 못되어 군에 입대하기까지 1년간을 예시 과목의 책을 그대로 읽었고 이것이 제대 후 법서를 공부할 때 상당한 도움을 준 것 같았다. 이런 점에서 학력 제한이 철폐된 오늘의 제도보다 과거의 예비 시험 제도가 보다 합리적인 제도가 아닐까?

흔히 독학도들은 소위 공부 방법이나 수험 정보, 고시 기술론, 고시 분위기 등에 생소함을 걱정하게 되나 그런 점은 고시 잡지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험 기간 중 많은 사람들과 많은 얘기들을 나누어 보았으나, 수험 잡지의 합격기나 좌담회, 통계 기타 안내편에 나오는 이상의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다.

 

3) 병역 문제

  군에서 공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러나 어차피 가야 한다면 일찍 갔다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현역 복무 중 가는 세월을 한없이 초조하게 생각했으나, 마치고 나니 부담이 없어 좋았고 또 졸병 생활 자체가 하나의 수업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수험 과정 중에 필요했던 끈기 있는 자세는 군에서 몸에 익힌 바 큰 것이었다.

 

4) 연애와 결혼

  처음 8개월에 걸친 일방적 구애 작전은 시간과 정력의 손실이 너무 컸다. 그러나 일단 결혼한 후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아내의 세심한 배려는 말할 것도 없고 점심을 가지고 올 때면 언제나 따라오는 개구장이 신걸이의 재롱은 식사시간을 즐겁게 해 주었다. 붉은 낙조를 바라보며 집에 건너오면 또 반겨 주는 신걸이의 고사리 손이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깨끗이 잊게 해 주어, 나는 침체기를 몰랐고 따로 휴식이나 기분 전환 거리가 필요 없었다.

애타는 애인들 있으면 결혼들 합시다.

 

5) 건강

  절대적 조건임은 두말 할 것 없고 다만 공부로 오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보다 초조, 불안 등의 심리적 파탄에서 오는 손실이 훨씬 더 심각하고 장기적인 것이다. '고시 아니면 파멸'이라는 생각이나 출세에의 지나친 집착, '최단기' '수석합격' 등의 욕심은 사람을 견딜 수 없이 초조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하나의 직업인이 성실하게 직장에 임하듯 수험 생활에 임했더니 장기에 걸쳐 장소를 옮기지도 않고 공백 기간도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바꾸고도 곧잘 대성하더라. 일정시까지 안되면 직업을 바꾸면 그만이다. 여하튼 다소간의 긴장은 필요하겠으나 지나친 긴장 불안 초조는 금물이다.

 

  또 며칠을 허송했다 하여 갑자기 초조해지고 그를 보상하겠다고 급하게 열을 올리고 무리를 하는 것은 잇달아서 또다시 며칠의 침체와 시간의 낭비를 강요하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다. 지나간 시간은 아무리 아까워도 깨끗이 잊는 것이 좋다. 장기전에서의 며칠의 허송은 그리 문제되 지 않는다. 나는 최종 정리 기간에도 부부 관계는 억지로 금욕하지는 않았다.

여하튼 나는 이런 느슨한 자세로 공부했다. 그러나 결코 남보다 노력을 덜하지는 않았다. 보통 10시간은 넘게 공부했고 일단 책상에 앉으면 무서운 집중력을 구사했다. 머리가 혼란해지고 잡념이 생길 때에는 책을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안정이 되었다. 그러나 일단 책을 떠나면 고시는 깨끗이 잊었다. 이런 느슨하면서도 투철한 자세는 확고한 직업관에서 왔다고 생각되지만, 또 합격에의 신념으로 보완될 때 더욱 안정적이라 생각된다.

 

<출처 : http://gongsin.com/zbxe/11684697>

"도톰한 불고기와 기억에 남을만한 고기 먹는 방식"

 

안녕하세요 간다루입니다.

 

오늘은 성신여대로 나들이를 나갔다 왔습니다.

 

벚꽃보며 돌아다니다 보니 저녁때가 되더라구요.

 

그래서 평소 먹던 맛집을 방문했습니다.

 

 

 

 

성신여대 로데오 거리 들어가다보면

 

골목사이에 있어요.

 

 

맛없는 고기를 먹기에 인생은 존나 짧다.

 

입구부터 틀린말이 하나 없습니다.

 

일단 무릎부터 치고 들어가줍니다.

 

 

메인메뉴는 조폭불고기입니다. 

 

저는 조폭불고기 2인

 

18K도시락

 

김치냉국수를 시켰습니다.

 

 

고기가 나오면 직원분이 직접 구워주십니다.

 

그래서 태워먹을일도 없고

 

전문가의 손길이 닿으니 

 

고기가 맛이 없을수가 없었습니다!

 

 

성신여대 독의 또다른 특징은

 

먹는 방식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따라 먹어줍니다.

 

일단 김위에 무쌈채를 올려주고

 

 

초고추장? 같은 소스에 고기를 찍고

 

찍은 상태로 미숫가루를 묻혀줍니다. 

 

 

그 다음에 바로 입속으로 직행해줍니다.

 

다채로운 맛이 입안에서 펼쳐집니다.

 

 

사이드 디시로 나온 김치말이 국수를 한입에 

 

드링킹 해줍니다.

 

맛이 깔끔하고 좋습니다.

 

배가 부릅니다.

 

오늘도 행복하네요.

 

이상 성신여대 맛집 독 리뷰였습니다.

 

간다루 평점 :

 

 

 

 

 

 

 

 

 

 

"특유의 가래떡 떡볶이와 중독성 있는 맛"

 

안녕하세요 간다루입니다.

 

오늘은 자주 찾는 분식집에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정릉동에 생긴지 얼마 안된 떡볶이 집이지만

 

떡볶이떡이 독특하고 소스가 맛이 좋아 자주 찾고 있습니다.

 

 

 

 

정릉시장 진입로 삼거리에서 보시면 바로 보여요!

 

 

정릉시장 입구에 생겼어요.

 

떡볶이와 함께 각종 분식을 팔고있습니다.

 

 

떡볶이랑 김말이튀김, 참치국물비빔밥을 먹었습니다.

 

 

분식이 옛날 동네떡볶이집 그릇같은곳에 담겨나오니 

 

꽤나 분위기가 있어지네요.

 

두툼한 떡볶이의 굵기가

 

실감이 납니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바로 그 떡볶이

 

문을 나서는데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한컷

 

간다루 평점 : ★☆

안녕하세요! 간다루입니다


오늘은 율전동 동사무소 독서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성균관대역에서 내려오시면 율전동 파출소 옆으로 


밤밭문화센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밤밭 문화센터 4층이 바로 독서실입니다.





1층 진입구에 여성 안심택배 보관함도 있네요.





문화센터 안내도입니다.

`

2 ~ 3 층은 동사무소에서 운영하는


문화 프로그램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9시부터 6시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1층으로 동사무소로 갈수있네요.





4층으로 올라오시면 조그만 문고와 독서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문고에는 주로 어린이용 도서가 많이 있더라구요.




독서실 입실시 방명록을 반드시 작성해야 합니다.



독서실 운영시간 입니다.


평일은 2시부터 10시까지


주말은 9시 반부터 6시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방형 좌석과 칸막이형 좌석으로 약 80석 정도입니다.


밤밭 독서실은 접근성이 좋다는게 가장 큰 장점인것 같습니다.

 

이상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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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다루입니다.


오늘은 수원 일월도서관을 다녀왔습니다.



함께 떠나볼까요?!




율전파출소 사잇길로 들어가면 버스정류장이 나옵니다.



27-1번과 27번 마을버스가 지나갑니다.


27번을 타면 바로 앞까지 가게됩니다.


27-1번을 타면 약간 걸으셔야하니 유의하시기 바래요.




3번 시내버스도 일월도서관을 지나가네요.




드디어 일월도서관에 도착했습니다.


만들어진지 얼마되지않아서 외관이 깔끔하고


내부디자인도 기존의 도서관과는 다르다는것을 느낄수 있었어요.



도서관 앞쪽으로는 휴식시설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책읽다가 나와서 친구와 차 한잔하면


나쁘진 않겠죠?



도서관 앞쪽으로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들어가 볼까요?



도서관 개방시간입니다.


쭈구려앉아있는 필자의 모습도 보입니다.


잘생겼네요.



지하 1층에는 북카페와 강당이 있습니다.




강당을 평시에 개방하여 학습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계단을 타고 쭉 올라가다보면 어린이 열람실로 나오네요.




2층에는 사물함과 휴게실, 그리고 종합자료실이 있습니다.



인원이 많아서 내부는 사진촬영 하지않았습니다.



책을 읽는 공간과 학습공간이 적절히 배치되어있었습니다.


독서실처럼 공부할수 있는 공간이 딱 나뉘어져있지않지만


이용하기에는 무리가 없었습니다.


이만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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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다루입니다.


누나와 요즘 모바일 베틀그라운드에 푹 빠져있어요.


시간 날때마다 누나랑 함께 에란겔을 달리고 있습니다.


사용하던 트리거가 싸구려라 몇번 쓰지 않았는데 고장이 나더라구요.


그래서 약간 힘좀써서 버튼식 트리거를 새로 구매해봤습니다.



이전에 쓰던 트리거는 정전식이라


누르면 화면에 정전기가 전달되는 방식입니다.


고장이 나서 쿠킹호일로 감아놨어요.




새로 구매한 트리거는 


누르는 버튼이 굉장히 견고합니다.


버튼은 메탈소재로 이전에 쓰던 트리거 보다 훨씬 안정감이 있었습니다.




트리거 뒤쪽에는 핸드폰과 밀착시켜주는 고정핀이 있습니다.




케이스두께가 두꺼우면 장착이 불가능할수도 있어요.


아예 끼지 않거나 얇은 케이스정도면 쉽게 낄수 있습니다.




버튼을 누르면 고무패킹 같은 부분이 화면에 닿으면서 인식이 됩니다.


기존의 트리거는 정전식이라 화면에 계속 붙어있어서 오류가 많은데


이것은 눌러야지만 인식이되서


샷 정확도가 높아졌어요!




손으로 잡았을때 안정감있고 편하게 게임을 즐길수 있습니다.


이만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장점


버튼식이라 정확도가 높다.


고정이 잘되고 탈부착이 쉽다.


단점


일반 트리거에 비해 약간 비싼가격 (9000원)


구매한곳 입니다 참고하세요


광고글은 아닙니다.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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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접이식 자석 바둑판  (1) 2018.07.01

안녕하세요! 간다루 입니다.


요즘은 취미생활도 바둑을 배워보고 있어요.


어릴때 쓰던 바둑판으로 두곤합니다.



그런데 집에 있던 바둑판 세트의 바둑알이 몇개 부족하고 


크기도 너무커서 관리가 힘들더라구요.



바둑알을 많이 잃어버려서


절반밖에 남아있지 않네요.



이왕 취미생활에 투자하는거 큰맘먹고 


접이식 자석 바둑판을 하나 샀습니다.


네이버에 검색해도 종류가 거의 이거 하나밖에 없더라구요.


네이버에 접이식바둑판 치시면 바로 찾을수 있습니다.



일단 박스 뜯으면 외형은 굉장히 말끔합니다. 


반짝반짝 광택이 납니다.


눈이 부셔요.




접이식 바둑판 답게 크기가 일반 바둑판의 2/3 정도 크기입니다.


접으면 훨씬 작아져요.



크기는 대략 28cm정도 입니다.



엣지 부분에는 양각무늬가 들어가있습니다.


바둑판 격자는 플라스틱 프린팅 한 것을 붙인것 같았습니다.


맘먹고 뜯는다면 벗길수도 있을것같았어요.



아무래도 플라스틱 프린팅을 붙이다 보니


생활기스에 많이 약하더라구요.


배송온것을 확인해보니 이미 기스가 나있었습니다. ㅠㅠ



반으로 접힌 바둑판을 열면


바둑알을 담는 통이 나옵니다.


바둑판 자체에 바둑알통 모양으로 양각이 되있습니다.


그래서 바둑판을 닫았을때 고정이 되어있어요.



흰돌은 광택이 많이나고 크기가 검은알보다 눈에띄게 큽니다.



뒤쪽엔 자석이 붙어있습니다.



검은돌은 흰돌보다 작고 광택이 나지 않아요.




돌 크기 비교했을때 차이가 많이납니다.


크기가 비슷했다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죠.


실제 바둑알은 검은알이 더 크게 제작이 됩니다.


흰돌보다 시각적으로 작아보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자석바둑알은 검은알이 더 작아보일텐데 크기도 훨씬 작네요.



검은 알 크기가 많이 아쉬운부분이였습니다.



날일자 정석을 해봤습니다.


실제 사용시 자석접착력이 뛰어나 


바둑을 두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장점


크기가 작아 휴대성이 좋다.


바둑을 두었을때 한눈에 들어온다.


단점


바둑판이 생활기스에 약하다.


바둑알 크기가 너무 다르다. 


 검은 알의 품질이 떨어진다.


총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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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달리 오늘은 푹푹찌는 한여름 날씨네요.


점심 늦게 라면먹고 도서관으로 출발했습니다.



서수원 도서관은 성균관대역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습니다.


하지만 도로가 쭉 뚤려있어서 버스타고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요.


버스를 타고 구운동 하이마트 정류장에 내리시면 됩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어떤 버스가 오는지 적혀있네요.


시내버스 36 61 62-1 90 99 99-2 


시외버스 7790 7800 


성균관대역 방면에서 서수원도서관 방문하실분들은 참고하시면 좋을것같습니다.



버스정류장에 내리시면 드넓은 서수원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아직 서수원은 개발이 되지 않아서 논밭이 굉장히 넓어요.


사람이 많은 성균관대역 근처와 완전 다른모습이어서


시골에왔나 착각도 듭니다.




하이마트 쪽으로 신호등을 건너줍니다.



기아자동차 방향으로 한번더 건너줍니다.



상가 뒤쪽으로 진입하시면 골목이 보입니다.




골목끝에는 공원이 있어요.




농구장과 테니스장이 마련되어있습니다.



공원 위쪽으로 올라가면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할수있는 기구들이 있네요.



공원에서 내려와 도서관으로 가볼까요?



녹음이 우거진 숲을 지나보면 도서관이 보입니다.



도서관 입구에는 조그만 편의점도 있네요.



드디어 서수원 도서관에 도착했습니다. 



서수원도서관은 둘째, 넷째주 월요일에 휴관하고 있습니다.





1층 휴게실과 어린이 도서관


2층 강의실과 강당


3층 종합자료실 및 컴퓨터


4층 열람실


2000년대에 개관한 도서관이라 그런지 열람실과 자료실을 아예 따로 나눠놓은 구조가 돋보이네요.


화서 다산도서관과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입니다.





2층에 올라와보니 강의실과 강당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따로 열어놓지는 않았는데요.


시험기간에 학생들을 위해 개방하고 있습니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옆에는 계단이 있습니다.


좋은 글귀들이 붙어있네요.



2층에 조그만 쉬는 공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3층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바로 종합자료실이 눈에 들어옵니다.



차량을 가져오실분은 참고하시면 좋겠네요.




3층 자료실 내부입니다.


편하게 독서할수있는 안락의자가 많이 있어서 좋았어요.



우측엔 컴퓨터 자리와


간행물 열람석이 있습니다.





책장 끝에는 노트북을 사용할수 있게 코드가 놓여있었습니다.



4층은 


1열람실, 2열람실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는 개찰구가 있습니다.


통과하려면 1층에서 좌석을 뽑고 올라오셔야 합니다.



천장에는 채광창이 있네요.





4층 야외휴게실은


열람실 바로 앞에 있습니다.



1열람실은 칸막이


2열람실은 개방형 위주입니다.



열람실 앞쪽에는 사물함과 신문독서대가 있네요.



제2열람실 자리 배치도입니다.


07:00 ~ 23:00 운영하고있습니다.


오늘은 서수원도서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책 소장량이 많아 인상적이였습니다.


이만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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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주는 종강해서 시간이 많이 널널하네요. 


다음주 학원알바하기전까지 시간도 남고  


학원업무에 대한 공부도 좀 할겸해서 집근처 도서관에 들렸습니다.






화서 다산도서관은 화서역 1,2,3,4번 출구에서 길건너 한블럭 정도 걸어가면 쉽게 찾을수 있어요.


도서관 가는길에 편의점이 있어서 공부하다가 간단하게 끼니떼우기 좋습니다.



편의점 맞은편으로 도서관이 살짝 보이네요.



도서관 앞에 수영장이 생기나 봅니다. 


평일에는 공사를 하지 않아서 소음은 문제되지 않았어요.



도서관 앞에는 운동장과 간단한 체육시설이 있어서 책읽다가 찌뿌둥할때 몸풀기 좋을것 같네요.





도서관 바로 앞에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드디어 화서 다산도서관 도착!


2016년 6월 30일에 개관한 화서 다산도서관은


오픈한지 얼마 되지않아 외관이 굉장히 깔끔했습니다.



도서관 1층에는 신문읽는곳과 조그만 북카페가 마련되어 있네요.




화서 다산도서관은 총 3층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1층에는 카페와 어린이 도서관


2층에는 휴게실과 열람석과 자료실


3층에는 열람석과 동영상 및 인터넷 검색을 할수 있는 컴퓨터가 놓여져 있습니다.



2층에는 휴게실과 테라스, 그리고 사물함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도서관 내부는 2층과 3층이 함께 되어있어 


천장이 굉장히 높은데요


덕분에 공간이 넓어보이고 쾌적한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2층에는 좌식으로 열람할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색다른 분위기가 났어요.



저녁은 봉구스 밥버거와 홍라면


양념을 절반만 넣고 


밥버거와 비벼먹으면 정말 맛있죵ㅎㅎ



3층 입니다. 컴퓨터석과 열람석이 크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은 구조입니다.


조용하네요.




3층에서 바라본 2층


독서할 때 당신은 항상 가장 좋은 친구와 함께 있다.


좋은 말이네요? ㅋㅋ





3층에는 컴퓨터와 열람석

 

1인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3층에는 야외휴게실이 있습니다.

 

 

 

공부하다가 한숨 돌리기 좋을것같네요.


최근 도서관은 열람석과 자료실을 분리하지않고 한 공간에 배치하고있습니다.


과거의 독서실처럼 생각되는 도서관이 아니라


 책을 가까이 할수있는 진정한 도서관으로바뀌는것 같습니다.


심심할때 책에 손이 가게 되더라구요.


이만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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